여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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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는 한숨을 쉬고 살랑거리는 근처 나무를 쳐다봤다. 사부작 소리를 내며 자기들끼리 부딪히는 나뭇가지 위에는 햇살이 모래알처럼 자잘하게 깔려 있었다. 더 높은 곳에 있는 나뭇가지의 그림자와 한데 어우러진 파릇파릇한 자연의 모습에 어찌하여 시선을 빼앗겼을까?
세계수가 생명으로 충만하던 시절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
“난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그렇게 따지면 제국에 있는 모든 나무가 세계수로 보이는 병이라도 걸려야 한다. 생김새로 따지면 세계수가 평범한 나무에 비하면 얼마나 더, 훨씬 멋있는데!
나는 연이어 소중한 이들이 나타나 자꾸만 단단하던 나를 무너뜨리고 뒤흔드는 통에 이런 연약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여겼다.
만약 ‘양심’을 되찾지 않았다면 내가 그토록 우울해하며 멍하니 천장만 쳐다볼 일도 없었을 테니까.
프레이리와 칼라일, 로노웨와 베리스가 내가 기운이 없다는 걸 알아채는 일도 없고, 헤카테와 제프의 끔찍한 자장가에 시달릴 일도 없고, 뒤늦게 치부를 들킨 것처럼 수치심을 느끼지도 않았겠지.
물론, 반가웠던 얼굴을 다시 보는 건 좋았지만 그뿐이었다.
세계수와 용용이, 두 존재가 내게 남기고 간 잔재는 심연 어딘가에 꽁꽁 싸매어 둔 마음의 상자에 금이 가게 하여 나조차 잊고 있던 감정에 자꾸만 휩쓸리게 했다.
안 그래도 칠 년 전에 보물찾기하면서 깨달았던 감정의 너울에서 겨우 벗어나는 건가 싶었는데, ‘양심’을 되찾으면서 잊고 있던 기억까지 한꺼번에 밀려오니 어지러웠다.
특히 괴로웠던 건,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사유가 있었다고 해도 내가 사람들의 목숨을 많이 앗아갔었던 점이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작정 밀고 나가고, 기회도 놓치지 않고 반드시 활용하고, 전생에 황제였을 때는 전쟁을 일삼으며 공포 정치까지 했었으니 그 과정에서 날 암살하려고 했거나 반대하는 놈들을 숙청한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다음 생에 짐승으로 태어나기 싫으니,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는 건 최소한으로 해왔다고 여겼는데……이 손으로 피칠갑을 만든 이가 너무 많았다.
그게 정말 직접 죽인 것이 아닌, 내 명령, 말 한마디에 의한 것이었어도 말이다.
“그럼 신이 전하께 낸 문제가 뭐였는지, 알고 계신다는 거네요?”
한편, 릴리스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오른손으로 턱을 괴었다. 녀석은 전하께서는 총명하시니, 수백 년 전의 그 일도 하나도 안 빼먹고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거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근데 왜 아직도 답을 못 찾았어요?”
다음에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치우고, 내 앞으로 살짝 몸을 숙이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의문과 장난기, 호기심이 뒤섞여 있는 릴리스의 눈빛은 황녀로 태어날 때까지 수백 년이 걸릴 문제가 아니지 않았느냐고 묻는 듯했다.
‘아, 그렇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신의 질문이 이제 무엇이었는지도 흐릿하다.
황녀 직전의 삶까지는 툭하면 전쟁 일으키면서 여러 나라의 고서와 신전을 이 잡듯이 찾아내서 답을 찾으려고 했던 걸 보면, 수백 년 동안 집념을 갖고 찾아왔던 만큼 기억은 했던 거 같은데 말이지.
이상했다.
중간에 거지로 태어나기도 해서, 중간에 헛되이 보낸 삶이 있어서 그런가? 삶이 반복될수록 신의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신의 말이 세월 속에서 조금씩 변질하였던 거 같다.
아니,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양심’을 되찾은 여파로 다른 기억까지 혼동이 와서 일시적으로 먹구름에 가려진 해님처럼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무조건 양심 타령하니까 핑계처럼 느껴진다.
‘뭐였지?’
나는 애써 태초의 인간이었던 때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부터 네게 문제 하나를 내마. 만약 네가 제대로 된 답을 말한다면 롤배팅 롤베팅 상자를 돌려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일부러 가려놓은 것처럼, 신이 질문을 하던 순간만이 정확하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가 생생히 꼬불거리는 새싹처럼 기억이 난다. 머릿속에서 팔팔하게 날뛰었다.
그때 신이 두 번째 인류가 준 사랑을 담은 상자를 가져간다고 하는 바람에 당황해서 허둥지둥 여러 대답을 내어놓는 내 모습만 선명하게 그려졌다.
‘고기? 보석?’
[…….]
‘하늘?’
그렇다고 지금 릴리스의 말에 떳떳하게 대답하고자 권능을 사용해서 과거를 들여다볼 수도 없다. 권능을 쓰면 수명이 줄어드는데, 고작 누군가의 한 마디에 대한 기억이 온전치 못하다고 초월적인 힘을 쓰기에는 투자 대비 손해가 막심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권능을 개방해야 했던 건 프레이리를 내 편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날 밤, 딱 한 번이면 족했다.
신이 내게 내린 문제가 하찮다는 건 아니지만, 수명을 걸고 힘을 또 쓰는 건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있는 장소도 문제다. 연무장에서 휘황찬란한 보랏빛을 터트리면서 권능을 쓰면 시선을 끌기도 좋은데, 칼라일이 못 볼 리가 없다.
저 녀석이 신의 사자와 마주쳐서 대화를 나눈 것도 신경이 쓰이는 마당에 말이다. 이러다간 내 비밀을 전부 토해내야 할 수도 있었다.
하늘이 도운 건지, 칼라일 자식이 그 뒤로 내 눈치를 보는 건지 몰라도 구태여 먼저 묻지를 않으니 그냥 묻어두기로 한 거 같지만…….
“내가 신한테 대답한 것 중 몇 개는 기억이 나.”
나는 끙 소리를 내며 팔짱을 풀고 코밑을 검지로 한번 쓱 훑었다.
“분명히 기억하는 건 그것뿐이라는 게 문제지.”
릴리스가 이거 가지고 또 놀릴까, 싶은데 될 대로 되라고 해. 나는 발을 앞뒤로 흔들거리며 대수롭지 스타베팅 롤드컵토토 대답했다. 괜히 거짓말하기도 그렇고, 대답하는 데 시간을 끄는 게 이상할 테니까 말이다. 바보 취급당하는 게 제일 싫었다.
“신이 나한테 뭐라고 물어봤는지, 그 순간에 한 말은 잊어버렸어.”
하하, 그 순간 릴리스는 짧게 웃더니 옆으로 몸을 비켜서며 몸을 돌렸다. 녀석은 곧 칼라일이 검술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 손을 옆구리에 얹었다.
나는 릴리스가 방금 웃은 게 평소와 다르게 참 묘하다는 걸 눈치챘다. 곁눈질하니까 웃고 있는데, 방금 그 웃음소리는 날 비웃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릴리스라면 저 대답에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수백 년에 걸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고 매번 난리를 피워놓고, 이제 보니까 생각이 잘 안 난다고 하니,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다 싶을 거 아니야?
‘망했군.’
다른 사람 평가를 깊게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째선지 온몸이 콕콕 쑤셔오는 불편함이 든다. 나는 이미 엎질러진 일,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럼 전하께서 영면을 원하신다면 공자님을 신경 쓸 게 아니로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릴리스는 칼라일을 지켜볼 적에는 장성한 손자를 보는 할머니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나를 쳐다볼 때는 무표정이 되었다.
“신이 전하께 한 질문이 무엇인지 밝히는 게 먼저 아닐까요?”
와, 얘가 싸늘해질 줄도 아는구나. 여태 나한테 맨날 웃거나, 능글맞거나, 롤토토 스타토토 척하는 모습만 보여줘서 무섭게 가라앉은 얼굴은 의외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지.”
나는 머쓱해서 앞만 쳐다보며 떠들었다.
“오래 살다 보니, 질문이 뭐였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최면술 같은 거라도 걸어서 전생을 엿보아서 찾아내는 것도 어불성설.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짧게 고민하다가 툭 내뱉었다.
“알려줄 생각 없니?”
“전 전하의 편이니, 당연히…….”
말끝을 흐리며 해줄 것처럼 굴기에 고개를 위로 내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더 오래 산 놈은 다르구나 싶어서였다.
“제가 안다면 알려드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것까진 몰라요.”
으악, 뭐야!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축 어깨를 늘어뜨렸다. 기대감이 한순간에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와르르 파괴되고 말았다.
“그 당시에 전 그 자리에도 없었던걸요.”
뒤이어 그런 걸 나한테 왜 물어보냐는 얼굴에 망연자실하였다.
“아시다시피, 전 전하께서 신의 사랑을 듬뿍 받으실 시절에 낙원을 훌쩍 떠나버렸잖아요?”
릴리스는 내가 난감해하자, 어깨를 으쓱거렸다. 곧이어 녀석은 짓궂은 얼굴로 후후 소리를 내며 웃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그 뒤로 절 찾아오거나, 심지어 제가 있는 곳에 신의 사자를 보내지도 않으셨어요. 그 홀덤사이트 온라인홀덤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여행을 다녔지만.”
릴리스는 이윽고 기지개를 켜며 그 시절에 여행하며 만난 친구들은 전부 죽어서 다시 태어났을 거 같다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긴 하지만, 막상 말을 꺼내고 보니 그립네요. 평범한 인간은 다시 태어나도 전생의 기억이 없으니까요.”
오래 산 만큼, 괴로운 나날도 많았지만 좋았던 순간도 있었겠지.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어느 삶에서는 여행을 다녔던 거 같았으니까. 모험가는 아니었고, 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졌었다.
그런 직업을 가진 자를 선원이라고 하던가? 험한 뱃사람으로 나고 자라서 죽을 때도 바다에서 죽었다. 하필이면 해적을 만나는 바람에 싸우다가 죽었더랬지.
‘거참, 뜬금없이 감상적이었군.’
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야겠다 싶어서 헛기침했다.
“그나저나 나 말이야.”
릴리스가 그때 낙원에 없어서 전혀 아는 게 없다고 하니, 질문의 방향을 살짝 비틀기로 했다.
“기억력이 나쁜 편이 아닌데, 어째서 신이 문제를 내던 순간만 기억이 안 나는 걸까?”
태초의 인간 이후의 삶도 전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지도 않으니, 낙원에서 살던 시절의 삶을 온전히 기억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드문드문 놀라울 정도로 떠올리는 삶도 있으니, 권능만 못 쓸 뿐이지 초월적인 홀덤사이트 온라인홀덤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 않나? 그래서 의아했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이윽고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 보니 오래 살기는 했지.’
“전하께서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걸 보니…….”
잠시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죄책감을 덜어내고 만족스러워하는 찰나였다.
“형벌을 받은 이유가 이제야 기억이 나셨나 보네요.”
릴리스가 잔바람이 부는 때에 맞추어서 말을 건넸고, 나는 팔짱을 끼며 릴리스를 올려다보았다. 키는 더럽게 커서, 열 살이 되어도 아직 땅딸보인 내가 눈을 마주하려니 목이 빠질 거 같다. 선 채로 쳐다보거나, 높은 의자에 앉아서 보는 건 괜찮은데 연무장에 있는 의자는 다들 다리 높이가 크지 않아서 문제다.
그래서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한 번 흘겨보듯 눈을 마주한 후, 스타토토사이트 롤토토사이트 바로 내려 눈을 감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잠시 미래의 모습을 그리며, 죄책감을 덜어내고 만족스러워하는 찰나였다.
“형벌을 받은 이유가 이제야 기억이 나셨나 보네요.”
릴리스가 잔바람이 부는 때에 맞추어서 말을 건넸고, 나는 팔짱을 끼며 릴리스를 올려다보았다. 키는 더럽게 커서, 열 살이 되어도 아직 땅딸보인 내가 눈을 마주하려니 목이 빠질 거 같다. 선 채로 쳐다보거나, 높은 의자에 앉아서 보는 건 괜찮은데 연무장에 있는 의자는 다들 다리 높이가 크지 않아서 문제다.
그래서 오래 쳐다보지 못하고 한 번 흘겨보듯 눈을 마주한 후, 스타토토사이트 롤토토사이트 바로 내려 눈을 감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니?”
나는 한숨을 쉬고 살랑거리는 근처 나무를 쳐다봤다. 사부작 소리를 내며 자기들끼리 부딪히는 나뭇가지 위에는 햇살이 모래알처럼 자잘하게 깔려 있었다. 더 높은 곳에 있는 나뭇가지의 그림자와 한데 어우러진 파릇파릇한 자연의 모습에 어찌하여 시선을 빼앗겼을까?
세계수가 생명으로 충만하던 시절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일까?
“난 단 한 번도 잊은 적 없어.”
그렇게 따지면 제국에 있는 모든 나무가 세계수로 보이는 병이라도 걸려야 한다. 생김새로 따지면 세계수가 평범한 나무에 비하면 얼마나 더, 훨씬 멋있는데!
나는 연이어 소중한 이들이 나타나 자꾸만 단단하던 나를 무너뜨리고 뒤흔드는 통에 이런 연약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여겼다.
만약 ‘양심’을 되찾지 않았다면 내가 그토록 우울해하며 멍하니 천장만 쳐다볼 일도 없었을 테니까.
프레이리와 칼라일, 로노웨와 베리스가 내가 기운이 없다는 걸 알아채는 일도 없고, 헤카테와 제프의 끔찍한 자장가에 시달릴 일도 없고, 뒤늦게 치부를 들킨 것처럼 수치심을 느끼지도 않았겠지.
물론, 반가웠던 얼굴을 다시 보는 건 좋았지만 그뿐이었다.
세계수와 용용이, 두 존재가 내게 남기고 간 잔재는 심연 어딘가에 꽁꽁 싸매어 둔 마음의 상자에 금이 가게 하여 나조차 잊고 있던 감정에 자꾸만 휩쓸리게 했다.
안 그래도 칠 년 전에 보물찾기하면서 깨달았던 감정의 너울에서 겨우 벗어나는 건가 싶었는데, ‘양심’을 되찾으면서 잊고 있던 기억까지 한꺼번에 밀려오니 어지러웠다.
특히 괴로웠던 건, 아무리 어쩔 수 없는 사유가 있었다고 해도 내가 사람들의 목숨을 많이 앗아갔었던 점이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작정 밀고 나가고, 기회도 놓치지 않고 반드시 활용하고, 전생에 황제였을 때는 전쟁을 일삼으며 공포 정치까지 했었으니 그 과정에서 날 암살하려고 했거나 반대하는 놈들을 숙청한 것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다음 생에 짐승으로 태어나기 싫으니, 누군가의 생명을 해치는 건 최소한으로 해왔다고 여겼는데……이 손으로 피칠갑을 만든 이가 너무 많았다.
그게 정말 직접 죽인 것이 아닌, 내 명령, 말 한마디에 의한 것이었어도 말이다.
“그럼 신이 전하께 낸 문제가 뭐였는지, 알고 계신다는 거네요?”
한편, 릴리스는 나를 유심히 쳐다보다가 오른손으로 턱을 괴었다. 녀석은 전하께서는 총명하시니, 수백 년 전의 그 일도 하나도 안 빼먹고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다는 거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근데 왜 아직도 답을 못 찾았어요?”
다음에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치우고, 내 앞으로 살짝 몸을 숙이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의문과 장난기, 호기심이 뒤섞여 있는 릴리스의 눈빛은 황녀로 태어날 때까지 수백 년이 걸릴 문제가 아니지 않았느냐고 묻는 듯했다.
‘아, 그렇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신의 질문이 이제 무엇이었는지도 흐릿하다.
황녀 직전의 삶까지는 툭하면 전쟁 일으키면서 여러 나라의 고서와 신전을 이 잡듯이 찾아내서 답을 찾으려고 했던 걸 보면, 수백 년 동안 집념을 갖고 찾아왔던 만큼 기억은 했던 거 같은데 말이지.
이상했다.
중간에 거지로 태어나기도 해서, 중간에 헛되이 보낸 삶이 있어서 그런가? 삶이 반복될수록 신의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신의 말이 세월 속에서 조금씩 변질하였던 거 같다.
아니, 아닐 수도 있다. 내가 ‘양심’을 되찾은 여파로 다른 기억까지 혼동이 와서 일시적으로 먹구름에 가려진 해님처럼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런데 무조건 양심 타령하니까 핑계처럼 느껴진다.
‘뭐였지?’
나는 애써 태초의 인간이었던 때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부터 네게 문제 하나를 내마. 만약 네가 제대로 된 답을 말한다면 롤배팅 롤베팅 상자를 돌려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일부러 가려놓은 것처럼, 신이 질문을 하던 순간만이 정확하지 않았다.
그 이후부터가 생생히 꼬불거리는 새싹처럼 기억이 난다. 머릿속에서 팔팔하게 날뛰었다.
그때 신이 두 번째 인류가 준 사랑을 담은 상자를 가져간다고 하는 바람에 당황해서 허둥지둥 여러 대답을 내어놓는 내 모습만 선명하게 그려졌다.
‘고기? 보석?’
[…….]
‘하늘?’
그렇다고 지금 릴리스의 말에 떳떳하게 대답하고자 권능을 사용해서 과거를 들여다볼 수도 없다. 권능을 쓰면 수명이 줄어드는데, 고작 누군가의 한 마디에 대한 기억이 온전치 못하다고 초월적인 힘을 쓰기에는 투자 대비 손해가 막심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권능을 개방해야 했던 건 프레이리를 내 편으로 만들고자 했던 그날 밤, 딱 한 번이면 족했다.
신이 내게 내린 문제가 하찮다는 건 아니지만, 수명을 걸고 힘을 또 쓰는 건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있는 장소도 문제다. 연무장에서 휘황찬란한 보랏빛을 터트리면서 권능을 쓰면 시선을 끌기도 좋은데, 칼라일이 못 볼 리가 없다.
저 녀석이 신의 사자와 마주쳐서 대화를 나눈 것도 신경이 쓰이는 마당에 말이다. 이러다간 내 비밀을 전부 토해내야 할 수도 있었다.
하늘이 도운 건지, 칼라일 자식이 그 뒤로 내 눈치를 보는 건지 몰라도 구태여 먼저 묻지를 않으니 그냥 묻어두기로 한 거 같지만…….
“내가 신한테 대답한 것 중 몇 개는 기억이 나.”
나는 끙 소리를 내며 팔짱을 풀고 코밑을 검지로 한번 쓱 훑었다.
“분명히 기억하는 건 그것뿐이라는 게 문제지.”
릴리스가 이거 가지고 또 놀릴까, 싶은데 될 대로 되라고 해. 나는 발을 앞뒤로 흔들거리며 대수롭지 스타베팅 롤드컵토토 대답했다. 괜히 거짓말하기도 그렇고, 대답하는 데 시간을 끄는 게 이상할 테니까 말이다. 바보 취급당하는 게 제일 싫었다.
“신이 나한테 뭐라고 물어봤는지, 그 순간에 한 말은 잊어버렸어.”
하하, 그 순간 릴리스는 짧게 웃더니 옆으로 몸을 비켜서며 몸을 돌렸다. 녀석은 곧 칼라일이 검술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 손을 옆구리에 얹었다.
나는 릴리스가 방금 웃은 게 평소와 다르게 참 묘하다는 걸 눈치챘다. 곁눈질하니까 웃고 있는데, 방금 그 웃음소리는 날 비웃었던 거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릴리스라면 저 대답에 황당하다 못해 어이가 없을 테니까.
그렇게 수백 년에 걸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다고 매번 난리를 피워놓고, 이제 보니까 생각이 잘 안 난다고 하니,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다 싶을 거 아니야?
‘망했군.’
다른 사람 평가를 깊게 신경을 쓰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째선지 온몸이 콕콕 쑤셔오는 불편함이 든다. 나는 이미 엎질러진 일, 뻔뻔해지기로 했다.
“그럼 전하께서 영면을 원하신다면 공자님을 신경 쓸 게 아니로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릴리스는 칼라일을 지켜볼 적에는 장성한 손자를 보는 할머니처럼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나를 쳐다볼 때는 무표정이 되었다.
“신이 전하께 한 질문이 무엇인지 밝히는 게 먼저 아닐까요?”
와, 얘가 싸늘해질 줄도 아는구나. 여태 나한테 맨날 웃거나, 능글맞거나, 롤토토 스타토토 척하는 모습만 보여줘서 무섭게 가라앉은 얼굴은 의외였다.
“따지고 보면 그렇지.”
나는 머쓱해서 앞만 쳐다보며 떠들었다.
“오래 살다 보니, 질문이 뭐였는지조차 기억이 안 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그렇다고 최면술 같은 거라도 걸어서 전생을 엿보아서 찾아내는 것도 어불성설. 나는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짧게 고민하다가 툭 내뱉었다.
“알려줄 생각 없니?”
“전 전하의 편이니, 당연히…….”
말끝을 흐리며 해줄 것처럼 굴기에 고개를 위로 내빼며 침을 꿀꺽 삼켰다.
역시 나보다 먼저 태어나고, 더 오래 산 놈은 다르구나 싶어서였다.
“제가 안다면 알려드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것까진 몰라요.”
으악, 뭐야! 나는 심드렁한 얼굴로 축 어깨를 늘어뜨렸다. 기대감이 한순간에 파도에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와르르 파괴되고 말았다.
“그 당시에 전 그 자리에도 없었던걸요.”
뒤이어 그런 걸 나한테 왜 물어보냐는 얼굴에 망연자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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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스는 내가 난감해하자, 어깨를 으쓱거렸다. 곧이어 녀석은 짓궂은 얼굴로 후후 소리를 내며 웃더니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은 그 뒤로 절 찾아오거나, 심지어 제가 있는 곳에 신의 사자를 보내지도 않으셨어요. 그 홀덤사이트 온라인홀덤 신경 쓰지 않고 신나게 여행을 다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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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를 중요하게 여기긴 하지만, 막상 말을 꺼내고 보니 그립네요. 평범한 인간은 다시 태어나도 전생의 기억이 없으니까요.”
오래 산 만큼, 괴로운 나날도 많았지만 좋았던 순간도 있었겠지. 나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어느 삶에서는 여행을 다녔던 거 같았으니까. 모험가는 아니었고, 배를 타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직업을 가졌었다.
그런 직업을 가진 자를 선원이라고 하던가? 험한 뱃사람으로 나고 자라서 죽을 때도 바다에서 죽었다. 하필이면 해적을 만나는 바람에 싸우다가 죽었더랬지.
‘거참, 뜬금없이 감상적이었군.’
나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야겠다 싶어서 헛기침했다.
“그나저나 나 말이야.”
릴리스가 그때 낙원에 없어서 전혀 아는 게 없다고 하니, 질문의 방향을 살짝 비틀기로 했다.
“기억력이 나쁜 편이 아닌데, 어째서 신이 문제를 내던 순간만 기억이 안 나는 걸까?”
태초의 인간 이후의 삶도 전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지도 않으니, 낙원에서 살던 시절의 삶을 온전히 기억한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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